10여 년 전 스페인에서 잠시 살기 전까지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당연히 한 달 정도 걸어서 횡단하는 방식으로만 갈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공부하던 스페인 친구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같은 코스를 여행한다는 얘길 들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스페인에 살 때는 실행하지 못하다가 직장을 옮기느라 잠시 시간이 난 2013년에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나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일 정도 자전거를 이용해 여행을 한 적 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스페인 자전거 라이더로 부터 알게 된 단어가 bicigrino. Bicicleta(자전거)와 Pellegrino(순례자)의 두 단어를 합친 자전거 순례자를 뜻하는 단어였다.
자전거로 순례하는 이 방식은 걸어서 전체 코스를 마치는 것과 같이 공식적인 순례의 방식이고, 흔하지는 않지만 말을 타고 순례길을 마치는 것도 인정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여행 중에 아스토르가부터 산티아고까지 같이 라이딩한 발렌시아에서 온 친구에게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프랑스 길 이외에도 세비아에서 시작하는 은의 길, 스페인 북쪽 해변을 잇는 북쪽 길 등에 대해 듣고는 그처럼 앞으로 매년 다른 길에 Bicigrino로 나서겠노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까미노 이후 한국에서의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은 내 호언장담을 실없는 허풍으로 만들어 버린 채로 10년이 흘러가 버렸다. 각 코스마다 생생했던 기억들은 희미해졌고, 이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과도 더이상의 교류는 없어졌다. 기념으로 사 왔던 티셔츠는 낡아서 버렸고, 스페인어판 자전거 순례 가이드북은 책장에서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Bicigrino로서 까미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행스럽고 스스로 대견한 것은 지난 10년간 랜도너스 등을 통해 장거리 라이더로서의 역량은 오히려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O Cebreiro를 앞두고 아침을 먹던 내게 든든히 먹어두라고 스페인 친구들이 말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내가 많이 먹으면 오히려 라이딩에 방해 된다고 했더니, 너는 진정한 aventura(모험)를 하러 왔구나 하며 자기들끼리 나누던 웃음의 의미를 몇 시간 계속되던 업힐에 지쳐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깨달았었다.
스페인 친구들은 인터넷 자전거 순례자 포럼에서 매일 달릴 거리와 고도변화를 미리 체크하고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번에는 10년 전에 발렌시아에서 온 후안에게 추천받은 은의 길(Via de la plata)과 리스본과 산티아고를 잇는 포르투갈 길을 역방향으로 라이딩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여행용 자전거를 새로 사고, 항공권을 예매했다. 이번에는 사전에 코스에 대한 정보를 가진 채로 가보려고 인터넷 포럼에서 두 코스에 대한 스페인판 가이드도 다운로드하였다.
벌써부터 한국에서부터 자전거를 휴대하고 바르셀로나, 세비야, 리스본 등을 이동하는데 따른 스트레스가 좀 있지만, 지금의 걱정의 대부분은 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까미노가 답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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