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더 거세진 비때문에 텐트가 흠뻑 젖었다. 먹을 것도 물 밖에 남아있지 않아 텐트 밖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날이 밝고 비는 점점 약해져갔다. 옆에서 묵은 캠핑카의 노부부는 트레일러를 옮겨가며 부산스럽게 움직이셨다.
날씨 앱을 새로고침하는데 지쳐서 순식감에 짐을 챙기고 젖은 텐트를 가방에 챙겼다. 이 단호힘의 원천은 루베가 불과 30킬로미터 앞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파리-루베를 통해 사이클링 팬으로서의 시야가 넓어졌고 이 스포츠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다. 루베로 가는 길은 비가 좀 와야 제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월요일인데도 문을 연 마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마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주유소에 딸린 작은 가게에서 오랫만에 머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영어를 하는 점원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이클의 성지답게 루베로 향하는 도로는 거의 차선 한 개만큼 너비의 자전거 도로가 계속 너그럽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루베를 얼마 앞두고 옥수수밭 옆에난 파베(돌길) 구간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자전거로 달려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멀리서 몰랐는데 큼직한 파베 사이엔 타일로 장식된 작은 돌들이 박혀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지만 이 길위로 달렸을 수많은 레이서의 모습을 떠올리니 감격스러워졌다.
루베 시내로 다가올 수록 뭔가 익숙한 거리의 모습이었다. 아마 매년 4월에 중계방송으로 나오던 그 거리가 여기쯤이었을거 같다.
그러다가 정말 플라타너스가 양쪽에 늘어선 마지막 파베 섹터가 나타났다. 이 짧은 돌길에 처음 들어선 레이서는 오른쪽으로 턴해서 벨로드롬으로 들어가 두바퀴를 돌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실제로 돌길에는 올해 우승자 매튜 반더폴부터 피터 사간, 톰 부넨, 에디 먹스 등 사이클 레전드로 남은 역대 우승자들의 명판이 띄엄띄엄 박혀있었다.
수없이 본 낡은 벨로드롬은 생각보다 모던한 은색으로 감싸고 있었다. 어린 사이클 선수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민 다음날 루베 레이스 결승점인 벨로드롬은 옆에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도시 외곽에 깨끗한 숙소를 예약하고 가보니 예술대학의 학생 레지던스였다. 깨끗하고 식기가 구비되어 있어 오랫만에 과일과 샐러드를 먹고 긴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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