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그물을 걷는 보트 엔진 소리와 간간히 머리맡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눈을 뜨니 거짓말처럼 아침이었다.
황급히 텐트를 걷고 떠날 채비를 했지만 예약한 제주행 페리를 타기 위해 진도항까지 가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어플로 확인해 보니 낙타등이 많아서 시간을 줄이기도 어려웠다. 예약을 취소하고 오후에 출발하는 배로 변경하니 여유가 생겼다. 제주도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한 조바심에 마음만 급했다.
실제로 가계해변에서 진도항까지는 꽤 긴 업힐들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빈 속에 올랐다가는 고생을 할 거 같아서 편의점을 들러서 충전도 하고 빵과 커피를 마신 후에야 진도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나고야 진도에서 제대로 조의를 표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본 등대까지 놓인 길가에 빼곡히 걸려있는 추모 메시지들을 읽고 사진도 찍었다. 사고가 난 맹골수로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표지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제주행 페리 출항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언덕을 다시 올라가서 혼자 식사해도 괜찮다는 식당에서 백반으로 첫 식사를 해결했다. 2인 이상만 주문할 수 있다는 장어탕을 먹고 싶었는데, 아주머니가 마음을 아셨는지 백반에 깻가루가 많이 들어간 장어탕을 내주셨다.
진도에서 출발하는 날렵한 제주행 페리에서 잠시 얘기를 나눈 제주 아주머니께서 여유있게 3일 일정으로 여행하려면 첫날 대정까지 가는 게 좋다고 하셔서 대정을 목적지로 잡았다. 카미노의 알베르게를 콘셉트로 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거기서 머물려고 했는데 다음을 기약했다.
배에서 자전거를 휴대한 승객을 먼저 하선하게 해주셨다. 터미널 입구를 나오니 바로 자전거 길을 표시하는 파란색 선을 발견할 수 있어서 바로 제주도 일주 라이딩을 시작했다.
시계반대 방향으로 제주도 일주 라이딩을 한 게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 그때보다는 표지판도 많아져지만 더불어 전기 스쿠터 등 퍼스널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스럽게 라이딩했다. 첫 여행 때는 금릉 해수욕장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 라이딩에 집중하다 보니 금방 지나치게 되었다.
해가 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적당한 날씨가 도와주는 환경을 즐기며 호사스러운 라이딩을 했다. 목적지인 대정읍 근처에서 어플로 검색해보니 두바퀴게스트하우스라는 자전거 여행자들의 평이 좋은 숙소를 발견했다.
바닷가에서 마을 쪽으로 라이딩해서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즈위프트를 이용해 라이딩을 하고 계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최근 랜도너스에 푹 빠지신 열정적인 장거리 자전거 라이더셨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서 열리는 랜도너스 대회에 참가하시는 것도 대단했지만 서울에서 브롬톤을 사서 완주하고 돌아왔다는 무용담도 멋졌다. 내 마지막 랜도너스는 코로나 이전이었는데 오랜만에 참가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알려주신 동네에서 거의 유일한 식당에서 된장오이냉국이 포함된 백반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사장님과 오랫만에 훈훈하게 자덕토크를 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큰 도미토리에 다른 손님은 없어 한적하지만 여유 있게 머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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