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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전거여행

제주도 자전거 일주 3일차 (성산 - 제주여객터미널, 24/5/16)

by wandererj 2024.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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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행히 어제보다는 바람이 잦아들었다. 오후에 여수행 배를 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오랫동안 다니던 마포 프릳츠가 제주에 새로 열었다는 카페이 들러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었다. 일방통행 좁은 도로를 조심스레 넘어서 들어가던 서울과는 달리 넉넉한 주차장과 성산 일출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어 좋았다. 소문이 났는지 애완견과 같이 오는 관광객이 많아서 더 편안한 분위기였다.
 


성산부터 제주여객터미널까지는 종달, 세화, 월정, 김녕, 함덕, 삼양 등 제주 동북지역의 유명한 해변을 지난다. 지난해 여름에 자동차로 지나가긴 했는데, 자전거의 속도는 그냥 지나친 것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미덕이 있다.
 
멋진 바닷가 절벽 위에 벤치 하나가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곳은 가까이 가보니 <종달리 불턱>이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에 대한 요령을 서로 나누는 장소였다고 한다.
 


바닷가에 형체가 남아있는 돌을 쌓아 만든 <동북환해장성>은 지난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적의 침입을 대비하기엔 옹색해 보였다. 지난해 여름 스페인 카세레스 성벽에서 본 강고한 방어 시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땅은 제국의 일부분이 아니었음을 상기했다. 아무려면 어떻겠나. 눈부신 하늘아래 바다 위로 풍력 발전기의 블레이드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해 와서 커피와 마카롱을 먹었던 월정리의 근사한 카페는 먼지에 덮인 채 문을 닫고 있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아쉬웠다.
 


여객터미널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인증센터인 함덕서우봉해변 인증센터에 들리니 비로소 하루에라도 일주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전거와 복장을 한 라이더를 볼 수 있었다. 크게 고단해 보이지 않은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벤치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 구경을 했다. 
 


여수행 한일 골드스텔라는 진도에서 제주로 올 때 탔던 날렵한 배보다 몇 배는 커다란 여객선이었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나무를 통째로 실은 화물트럭이 여러 대 탑승하고 있었다. 몇몇 다른 자전거 여행자와 같이 자전거를 화물칸 한쪽에 싣고 객실로 향했다.
 
제주와 여수를 오가는 트럭 운전기사분들은 대부분 객실 밖에서 편하게 자리 잡으셨다. 제일 저렴한 객실엔 히피풍 복장을 한 외국인 여행자가 능숙하게 요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짐짓 무심한 태도로 객실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으로 3일 동안의 여독을 풀었다.
 


여수엑스포역 옆 여객터미널에 내리니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역 근처 깨끗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는데 지난 이틀과는 달리 룸메이트가 둘이나 있었다. 
 


며칠 동안 혼자 지냈지만 최대한 완곡하게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은 새벽까지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두 청년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이를 악물고 충고 비슷한 것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언제나처럼 내 자제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다.
 


다른 숙박객이 신경 쓰이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두 번째 내려오고 나서야 자리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해야 할 인사를 당겨서 미리 작별인사를 나누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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