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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전거여행/2023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es)

Camino Portugues(포르투갈 길_R) Etapa 1: Santiago de compostella-Vigo

by wandererj 202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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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평소보다 늦게 자기도 하고, 대부분 계획한 코스의 일정을 마친 여행자들이어서 7시가 다 됐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하지만 오늘부터 동행이 없는 걸 알기에 단호하게 짐을 복도로 가져나와 채비를 마쳤다. 그간의 여정을 같이 또 따로했던 세비야 듀오와 우엘바 라이더 아구스틴에게 그간 즐거웠고 집에 잘 돌아가라는 왓츠앱 메시지를 보낸다.


평소에 대화하는 스페인어는 문장을 너무 거창하게 만들다가 동사 시제와 성수일치의 미로에 빠지는 내 문자는 가벼운데 비해, 그들의 메시지는 너무 정중하다.

벌써부터 안달루시아에 다시 방문하면 할 일들 목록이 아주 길다. 안달루시아 사림들은 낙천적이고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진지한 카탈란 사람들만 많이 대했던 내가 좀 적응이 늦었던 이유인것 같다.

포르투갈 길은 리스본이나 포르투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에서 마치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거꾸로 리스본까지 600킬로미터를 여행할 예정이다. 우연이라도 동행이 생기기 어려운 여정이다.

오늘 비고까지 가기엔 좀 거리가 있어 20킬로미터 전에 있는 Redondela를 목표로 산티아고 외곽으로 빠져나온다.

순례자 무리가 보여 따라갔더니 기차역으로 기차를 타러가는 사람들이다. 하룻만에 다들 표정이 가볍다.

산티아고는 갈리시아의 자치주 수도여서 그런지 대형트럭과 출근차량이 모여 혼잡했다. 다른 도시들을 빠져나오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신경이 곤두선다.

이후 Pontevedra 방향으로 난 카레테라를 따라 라이딩을 계속했다. 아침부터 곤두선 신경때문인지 그 간에 받있던 운전자들의 호의와는  다르게 도로 인심도 좀 각박하다. 자주 수신호를 보내고 아이컨택을 한 후 지나가기를 수십여회.

뭐라도 조치을 해야겠어서 중간마을에서 자전거샵을 검색해서 들어가 후미등을 하나 구입해서 새들백에 장착했다.


법으로까지 규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밝지 않은 아침에 스페인 라이더들은 대부분 후미등을 점멸상태로 라이딩을 하는 것같다.

험상궂게 생긴 주인 아저씨는 딸이 BTS 팬이라며 나보고 어떻게 스페인어를 하는지 어느 코스로 라이딩을 하는 지를 물어봐 잠깐 대화를 나눈다.

트라이애슬론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지 좀  들뜬 분위기의 폰테베드라에 도착하니 강물에서 바다냄새가 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조금만 가면 대서양이라고 한다.


대서양에 혹해서 달려가다 길을 잘못 들어 뒤짚어 오고 헤매다가 엠티비를 타시는 동네분에게 물어보니 잔말말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평소에 무관심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일반적인 스페인 사람들인 것 같다. 갈리시아 사람들은 좀 진지한 표정이라 그 변화가 극적이다.

힘들수록 길에서 귀인을 만나 힘을 얻는다. 나도 더 자주 귀인 역할을 해야할텐데 잘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수없이 물어보던 Redondela에 도착하니 비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랫만에 보는 오스본 토로 간판 앞에서 초코바를 먹고 라이딩을 계속한다.

비고에 가까워오자 오늘의 심란함을 모두 보상해주는 대서양의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고 시내도 항구를 끼고 언덕에 자리잡고 매우 깨끗하고 세련된 분위기이다. 예전 학교에서 비고 출신인 클래스메이트가 바르셀로나보다 좋으니 여러번 비고에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실제로 오는 데 10년도 더 걸렸다. 그녀가 갈리시아와 비고에 왜 그리 자부심을 가졌었는지 금새 이해가 갔다.


깨끗한 숙소를 잡고 15일만에 히루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리스본에서 예약한 한국행 비행기 날짜는 정해져 있어 뭐가 달라지지 않는다.

도시의 다국적인 분위기와 세련됨이 스페인 내전 이후 갈리시아인들의 디아스포라와 관련되어 있다는 표지판 등을 읽으니 그들의 슬픈 자부심에 많이 공감이 갔다.


박주영 선수가 입단하기 전부터 신비롭던 축구팀 셀타 비고의 오피셜 샵도 구경하고 오랫만에 츄로스 콘 초코라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힘겨웠던 하루를 버텨낸 스스로를 격려하며 하루를 마쳤다.


메리다에 도착하던 은의 길 세번째 날 이후 처음으로 100킬로미터 넘게 라이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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