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모르게 예전보다 밝고 세련되게 변한 리스본에서 주말을 잘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머물러 있으면 길 위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여행이 마무리될 쯤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단함을 이겨내는 것의 반복이다.
호스텔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짐을 꾸린다. 한 달동안 사용하느라 기름때로 더러워진 장갑, 양말 등은 버리고 세비야 데카트론에서 구입한 이후로 계속 조금씩 새어 나와서 신경을 거슬리던 체인오일은 자전거 보관 장소에 꺼내놓아 혹시 다음 여행자가 사용하도록 하였다.
출국할 때 박스를 구해서 진땀을 빼며 패킹을 한 것에 비하면 비용은 조금 더 들더라도 리스본의 자전거샵을 이용하였다.
Biclas Chihado (Largo de São Julião 21 nº 20, 1200-417 Lisboa, Portugal)는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코메르시우 광장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당초에 이용하려던 Biclas Belem을 비롯해 리스본에서 3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벨렝에 있는 샵은 자전거 렌탈을 주로 하고 패킹은 Chihado 샵만 한다고 한다. 며칠 전에 구글 메시지로 내 자전거 모델과 방문시간(10시 30분)을 알려주며 예약을 해놓았다.
미캐닉인 주앙과 조지는 내 이름과 비슷하다며 얼마전 한국 라이더 4분이 이 샵에서 패킹을 했다며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리스본에서 자전거 포장' 정도로 검색하면 동영상으로 참고가 가능하다.
비용은 29유로이고 두 사람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 보다 높은 확률로 훌륭한 영어를 구사한다.
필요한 물건만 배낭에 옮기고 자전거를 맡기니 12시 30분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그 보다 더 일찍 마치게 되면 내 휴대폰으로 연락을 주기로 한다.
자전거 미캐닉이지만 자전거는 타지 않는 조지는 본인의 BMW 바이크를 보여 주었다. 전날 호카곶에서 바이크 라이더들을 많이 봤다고 하니 사고가 있어 라이더 한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경찰과 버스 기사 등이 길 가에 서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이 사고 장소였다고 한다.
자전거로 호카곶까지 가기가 좀 부담스러워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다녀왔는데, 많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위태롭게 라이딩을 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좀 복잡했었다. 길이 좁고 주말이라 차량이 많은 신트라와 호까곶은 처음 가는 사람에겐 좀 위험해 보였다.
주말 동안 주로 숙소가 있는 Intendente 지역에 머물러서 패킹이 진행되는 동안 관광객이 많은 리스본 거리를 둘러보았다. 벤피카 오피셜샵에 들러 티셔츠도 구입해 오래 입은 윗옷을 갈아입었다. 벤피카가 38회 리그 우승을 기념하는 이 수수한 티셔츠는 하루 내내 부적처럼 효험을 발휘했다.
리스본에는 벤피카와 스포르팅 리스본, 두 개의 프로팀이 있는데 체감으론 압도적으로 벤피카 팬이 많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산 자전거 박스보다는 사이즈가 좀 큰지 앞 바퀴만 탈거하고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박스 겉에 사이드 방향으론 짐을 쌓지 말라는 문구와 손을 넣어 들 수 있는 구멍, 위아래 표시 등 공들여 제작한 박스여서 안심이 되었다. 오후 3시 40분 비행기이고 리스본 공항은 도심에서 멀지 않아 여유도 있었다.
우버 XL 차량을 부르려고 하는 데 미캐닉 조지가 아는 우버 차량 드라이버가 본인 샵에서 포장한 손님들을 공항으로 자주 데려다준다고 하며 내 의사를 물어보곤 대신 전화를 해준다. 20분 정도 걸리다고 했는데 실제론 조금 더 기다렸다.
여러 걱정했던 단계들이 모두 끝나고 정말 암스텔담행 KLM 비행기만 타면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를 북으로 또 남으로 종단하며 1,600킬로미터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마쳐 월요일 오후의 리스본 햇살과 함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역시 벤피카 팬인 드라이버 주앙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으로 향했다. 리스본 공항까지 20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공항 근처에는 사고가 있었는지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조금 조바심이 날 정도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고 큰 짐이 있는 나를 위해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 내려주었다. 비용은 39유로가 들었다.
리스본 공항 KLM 체크인 카운터에 있는 직원도 환하게 웃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티셔츠를 입었다고 칭찬하며 순식간에 체크인 절차를 처리해 주었다. 오히려 내가 궁금해서 무게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며 24킬로그램이라고 알려주었다. 단지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뺐냐고만 물어보았다.
큰 사이즈 짐을 맡기는 곳은 체크인 카운터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테리아 맞은 편에 있었다. 공항에 EVOC 등 자전거 전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얼마 전에 지나간 폰테베드라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 월드챔피언십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모습이었다.
리스본에서 3시간 걸려 암스텔담에 도착하니 추석을 앞두고 한국행 대한항공편을 기다리는 한국인 승객들이 많이 보였다. 비로소 한 달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무난하게 마무리하긴 아쉬웠는지, 인천공항에서 좀 정신없는 일이 발생했다. 큰 짐을 기다리는 창구에 전담직원이 있어 자전거박스를 잘 찾았다. 출국 때 세비야에서 받은 것보다 훨씬 멀쩡한 상태로 나와서 안심했는데, 집으로 가는 공항버스 아저씨는 역시나 이렇게 큰 짐을 가져오면 기사가 힘들다고 첫마디를 던지셨다. 내가 유일한 승객이고 종점까지 갈 예정인데 항상 겪는 일이다. 짐도 내가 싣는데 뭐가 힘드신 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1 터미널과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승객이 많이 탑승하는 걸 보니 짐칸에 여유공간이 없을 수 도 있겠다 싶었다.
티머니고 어플에서 공항버스를 예매했는데 어플의 큐알코드로는 탑승할 수 없으니 종이탑승권을 발권해와야 한다고 해서 공항을 이리저리 달리고 나서야 탑승할 수 있었다. 출국할 때에는 어플로 탑승했었고 같은 버스인데 왜 다른지 이유는 모르겠다.
동네 공항버스 정거장에 내리니 기사 분이 역시 돈을 더 받아야 하는데 안받았으니 돈 버신 거라는 덕담을 하셨다. 5분 거리 아파트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차에 시동을 거니 한 달 동안 주차해 놓아서 그런지 방전이 되어 있었다. 저녁 9시가 넘어서 긴급출동을 부르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정류장 옆에 있는 마트에서 운반 카트를 사서 박스를 올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이 지나고 나서야 박스를 열어 자전거를 보니, 핸들바와 싯포스트만 별도로 분리되어 포장되어 있었다. 고글과 헬멧, 안장, 핸들바 등은 종이박스 조각으로 꼼꼼하게 개별 포장되어 있었다.
박스 길이를 재보니 175센티미터였다. 출국할 때 구입한 박스보다 조금 더 길어서 앞바퀴만 탈거하고 포크만 180도 돌려서 포장이 가능했던 것 같다. 박스는 버리지 않고 다음 여행을 위해서 창고에 넣어 두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일정 비용을 받더라도 한국에서도 좀 더 수월하게 버스에 자전거를 싣거나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스페인 CORREOS처럼 우리도 우체국에서 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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