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자전거여행

유로벨로5 스테이지 14: Saarlouis - Bissert

by wandererj 2024. 10. 14.
728x90

예상대로 전날 새벽부터 비가 더욱 거세어졌다. 나가서 확인해 볼 것도 없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새삼 비를 안맞는 텐트 자리를 배정해준 배려가 고마웠다. 당연히도 하루 더 묵으며 쉬기로 했다.

건물 구석이 독한 바카디 빈병이 있었는데, 누군가 이 자리에서 독주로 비오는 시간을 보낸게 아니었을까.

오후에 더이상 허기를 견딜 수 없어 비가 잦이진 틈을 타 구글맵으로 본 태국 식당에 가서 커리와 똠양꿍으로 속을 달랬다.

인근에 처음으로 한국에서나 보던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호젓한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슬비가 내리는 거리엔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만 홀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여전히 지 예보가 있지만 작은 공간에서 더 지내는 것도 못할 일이라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캠핑장 여주인 가비는 다음엔 여름에 꼭 다시 오라며 여정을 축복해 주었다.

역시나 출발부터 유로벨로 루트로 복귀하는데 애를 먹었다. gpx 파일 지점을 아무리 찾아도 자전거 도로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gpx의 정확도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정확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클전 기억을 되짚어 찾아가니 운하 옆으로 난 길로 복귀할 수 있었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운하를 따라 난 길을 달리니 독일답게 Saarthal 이라는 거대한 중공업 공장이 나왔다. 이전 여행에서 처음 보는 거대한 산업시설이었다.

이윽고 만난 Saarbruken도 운하를 따라 서울을 연상케하는 현대식 건물이 늘어선 도시였다. 그동안 벼르던 버겐스탁 샌들을 사고 지난 여행부터 사용해 이젠 은근한 악취가 나는 샌들을 신방가게 앞 휴지통에 버렸다. 물건이 늘어난 만큼 줄여야 마음이 편했다.

뭔가 퉁명스런 독일 사람들은 자전거 길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비율도 적고, 인사를 하면 뭔가 부담스러워 하는 듯 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전차가 다닌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로이터 속보를 보게되었다. 모국어를 3주째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라 그런지 더 특별한 마음이었다. 그녀의 성취가 앞으로 더 지속되길 빌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오후내내 용케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해가며 라이딩했다. 새로 산 샌들은 바닥에 두터워서 양말을 신고 페달링하기에 적당했다. Morton이란 EF팀 소속 울트라 사이클리스트가 애용한다고 하더니 이유가 있었나 보다.

계속 운하를 따라 달리다 산책하시는 할머니 두분이 뒤에 내가 있는 줄 한참 모르시다가 인기척을 알아채곤 밝게 인사를 하셨다. 억양이 미묘하게 달라서 'Ici est France?' 라고 물어보니 소녀처럼 웃으시며 여기 프랑스고 앞으로도 계속 프랑스라고 알려주셨다. 국경이란 장소에 따라 얼마나 부질없는지. 실제로 바닥엔 달팽이처럼 보이는 편형동물이 더 자주 보이고 낙시를 하던 사람들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6시가 다 되서야 '알사스의 마음'이란 멋진 이름의 캠핑장에 도착했다. 가벼운 비라도 오래 맞으니 몸과 마음이 쳐졌다. 직원은 이미 퇴근하고 없어 전화로 통화하고 캠핑장 내를 둘러보며 자리를 찾았다.

마침 와인을 드시던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박차고 같이 돌아다니며 물기가 덜한 자리를 물색해 주셨다. 내 지친 마음을 알아채셨는지 편히 쉬라고 격려해 주셨다. 아는 프랑스어를 조합해 의사표현을 시도했는데 할아버지들은 독일어를 사용하셨다.

그나마 덜 눅눅한 자리에 텐트를 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건너편을 보니 여전히 와인잔을 기울이던 할아버지들은 거봐 괜찮지 하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돌아보니 괜찮은 하루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