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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전거여행

유로벨로5 스테이지 17: Strasbourg - Bergheim

by wandererj 202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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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마른 사이클 복장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지난 토요일 밤의 흥겨움이 아직 남아있는 사람과 아침부터 어디론가 부지런히 향하는 사람들이 섞여서 도로 위는 벌써부터 활기차다.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쁘띠 프랑스(!)에 들러 사진을 찍으며 둘러 보았다. 사는 동네 근처에 가장 훌륭한 자전거 코스인 쁘띠 프랑스를 지나 호명산으로 갈 때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었다.

아마 가평의 쁘띠 프랑스를 기획한 사람이 이곳을 참고했었나 보다. 한국의 쁘띠 프랑스에는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 단체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스트라스부르의 쁘띠 프랑스도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유로벨로 루트로 찾아가다 들른 슈퍼마켓 앞에서 현지 주민인 남자가 내 차림새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자전거 타기 좋은 환경에 대해 호감을 표했더니, 자동차를 운전하면 경계석이나 차단봉 등으로 이동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차라리 도시 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가 낫다고 한다.

레저로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일상 생활애 녹아든 이동수단으로 자전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모습이 근사했다. 그 실행의 주체가 누구이든.

스트라스부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는 운하옆 도로도 자전거와 러너, 또 산책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유하며 일요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운하에서 벗어나 작은 마을을 벗어나선 며칠 전 독일에 들어섰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빈야드가 나타났다.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지나는데 '알자스 와인 루트'란 프랑스어 표지판과 함께 최대 경사도 17도라고 적힌 걸 얼핏 보았다.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심한 경사는 코펜버그 업힐의 22도였다. 물론 미리 알고 일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17도 경사는 실제로 나타났고, 더이상 운하길의 평화로움은 기대하지 말라는 알자스의 환영인사 같은 거였다.

어린시절 알퐁스 도데의 낭만적인 산문으로 처음 접한 지명 알자스에 실제 온 것을 실감하니 조금 감격스러웠다.

날렵하게 업힐을 치고 올라가는 로드 라이더의 모습에서 지레 눈을 돌리며, 나만의 페달링 리듬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힘들면 지금 타고있는 자전거의 스프라켓이 계산상 얼마나 업힐을 수월하게 만드는 지를 떠올렸다. 48T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51T였다.

몇번이나 멈춰서서 빈야드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아무리 광각으로 설정해도 눈에 보이는 포도밭의 광활함은 담기지 않았다. 차리리 멈추지 않고 이 포도밭 사잇길로 직진하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 더 이번 여행의 결에 맞는 것 같았다.

가끔 투어 프로그램으로 전기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 여행을 하는 그룹을 지나칠 뿐 갈색으로 변해가는 벌판에 둘러봐도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치는 작은 동네마다 작은 와이너리와 B&B (베드&브렉퍼스트) 운영되는 건물들이 알차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 자체가 상품임을 알리듯이 꽃넝쿨 하나도 허투로 꾸민 것이 없었다. 마을 전체에서 은근히 와인향이 나는 듯 했다.

또다시 찾아온 일요일에 또 미리 먹거리를 준비하지 않었다는 걱정이 체력이 소진되며 자책으로 변할 무렵, 걱정말라는 듯 작지만 따뜻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빵집. 블랑제리가 나타났다.

적혀있은 빵 이름을 프랑스어 발음으로 읽으며 주문하는 내 얼굴에서 허기와 지침을 읽으셨는지 놀라운 주문량에도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서울 서촌이나 성수에 있었더라면 분명히 오픈 러시(런) 할 게 확실한 에끌레어와 달팽이빵(escargot)을 카페오레와 함께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빵을 좋아하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둑해지는 포도밭 사이를 달려 농장을 겸해 운영하는 자그만 캠핑장에 도착했다.

경험이 반복되니 작은 마을에도 멈춰서 쉴 수 있는 바이크패킹의 장점이 여러 번거로움을 상쇄하는 것 같다. 영어를 하시는 친절한 여주인과 계속 치수를 재고 기계를 손보는 남편 분이 운영하는 캠핑장은 양쪽에 소박한 포도밭에 둘러싸여 있었다. 움직여서 이동할 때마다 센서등이 켜져서 앞을 밝혀주는 조명 시스템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우연이 아닐까 몇번니나 되짚어 가보아도 역시나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놀랍게도 작은 냉장고에는 차디찬 하이네켄 맥주도 있어 라이딩을 마치고 하는 내 루틴을 이어갈 수 았게 해주었다.

알퐁스 도데가 노래한 별 대신 어디에서 보다 아름다운 달이 포도밭 위 밤하늘을 푸른색으로 만드는 알자스의 아름다운 밤의 변화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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