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을 위해 출국하기까지 불과 며칠남았다.
어떤 경로로 오랫만에 낸 귀한 시간을 보내야 할 지를 궁리한 끝에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부엘타, 안달루시아의 여름, 세상의 끝으로 정하니 고민이 사라져 버렸다.
1. 부엘타 아 에스파냐
아마추어 자전거 라이더이자 프로 사이클링의 팬으로서 여러가지 형태로 자전거와 관련된 취미활동을 해왔다.
그 중에 하나가 3월 밀란 산레모로 시작되어 가을에 일롬바르디아나 월드 챔피언십으로 끝나는 사이클 경기를 유로스포츠 채널을 통해 관전하는 것이다.
길게는 6시간 동안 라이크라 재질의 옷을 입은 남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한국 시간으로는 늦은 밤부터 자정이 넘어서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 중엔 그걸 뭐하러 보냐고 힐난하는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목격한 수많은 드라마를 말로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관계이다.
솔직히 피니시까지 참지 못하고 잠들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이클링 팬으로서의 애정의 정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제는 십년도 지난 일이지만 스페인에 잠시 거주할 때, 당시의 Garmin Sharp 팀카를 우연히 목격하고 신났었던 기억이 만다.
또 우연히 놀러간 몬주익에서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purito란 애칭으로 불리는 Joaquim Rodriguez 선수가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한 Volta a catalunya를 관전한 적도 있었다.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스페인 일주 레이스인 부엘타 아 에스파냐가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다. Gran salida라는 명칭의 개막 행사와 두개의 스테이지가 함께 열린다.
첫 스테이지는 27일 토요일에 열리는 팀 타임트라이얼 레이스로 올림픽 선수촌이 있는 마리나에서 출발하여 바르셀로나 도심을 지나 에스파냐 광장 근처에서 피니시한다.
두번째 스테이지는 바르셀로나 북쪽의 마타로에서 출발하여 몬주익에서 피니시하는 코스이다.
항공편을 이 일정에 맞춰서 예약해서 위 두개 스테이지를 관전할 예정이다. 금요일 도착이어서 목요일 밤에 plaza del mar에서 열리는 팀 프레젠테이션은 아쉽게도 gcn+에서 봐야할 것 같다.
처음으로 현장에서 보는 그란투어이고, 오랜 시간 팬이었던 알베르토 콘타도르가 리포팅하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2. 안달루시아의 여름
이제는 겁쟁이 페달에 그 자리를 내줬지만 자전거를 다룬 가장 훌륭한 애니메이션은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이라고 생각한다.
애니의 배경이 된 모래바람이 부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자전거를 타는 스스로를 상상해본 적이 많다. 말라가에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근처여서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이번 자전거 여행의 시작점을 안달루시아의 가장 큰 도시 세비야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는데, 낮 최고 43도를 기록하는 요즘의 세비야 날씨를 보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애니 주인공 페페 베렝헤리가 먹던 가지절임은 실제로 존재하는 메뉴인지 궁금하다.
3. 세상의 끝
당연하겠지만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 전까지는 유럽대륙을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다.
그래서인지 이베리아 반도도 모서리 끝에 위치하고 있는 곳에는 세상의 끝이라는 지명과 어김없이 관련된 상징물이 있다.
달리 생가가 있는 카탈루냐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까다께스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동쪽 지점이란 표시을 본 적이 있고, 까미노 데 신티아고 프랑스 루트를 마치고 버스로 간 대서양 옆 마을은 이름이 대지의 끝을 뜻하는 피니스떼레였다.
남쪽의 네르하에 갔을 때에는 유럽의 발코니(balcon de europa)란 뷰포인트에서 아프리카 대륙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기도 했다.
산골마을에서 자란 탓인지 이런 세상의 끝 같은 종류의 장소가 가진 아우라에 쉽게 설득되어 감탄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여행의 최종 종착지는 포르투갈 리스본 인근의 호카곶(cabo do roca)으로 잡았다. 역시 오랜 시간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진 곳이다. 유라시아 횡단 자전거 여행자들이 목적지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4. 전체 루트
주말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부엘타를 관람한 이후에 8월 29일 세비아에서 은의 길이라 불리는 Via de la plata를 자전거로 여행할 계획이다.
매우 뜨겁고 황량한 벌판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비아에서 시작해 메리다, 살라망카 등을 거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약 1,000킬로미터 거리이다.
그 후에는 스페인의 비고, 포르투갈의 포르투, 코임브라를 거쳐 리스본까지 약 600킬로미터 코스로 라이딩하려고 한다. 잘 접하지 않아 그 자체로 신기한 대서양을 보며 자전거를 탈 예정이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해서 점심 전까지만 라이딩하고 오후에는 마을을 어슬렁거리거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부엘타 중계를 볼 예정이다. 지난 번 프랑스 길에서 그랬듯이 각지에서 온 사이클링 팬을 만나면 수다도 떨면서.
잠시만 방심하면 괜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뚫고 나오기도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땅 모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todo bien/tudo bem하게 한 달간의 시간을 보내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더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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